어린 시절 내가 가진 고질병으로
활자중독증이 있었다
이런 병이 실제하는 지는 모르겠지만
눈에 글씨가 보이지 않으면 불안해하는 증상이 나타나는 것을
달리 부를 말이 없었다
대부분의 고질병은 생활상의 불편을 낳는데
활자중독증이 있으며 다음과 같은 일이 생긴다
일단 청소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방을 쓸다가 책을 치우려고 들어올렸는데
다음 순간 그걸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가고 있다
자그마한 신문지 쪼가리 하나도 그냥 버리는 일이 없다
때로는 냄새를 못맡는 증상도 생긴다
빵을 굽느라 후라이팬을 불 위에 올려놓고 책을 읽다가
정신을 차려보면 빵이 아니라 숯이 만들어져 있는 경우가 꽤 많다
밥을 먹을 때
눈이 심심해서 밥상머리에 앉아 있을 수가 없다
결국 김치국물에 밥을 비벼 책상에 앉아서 퍼먹게 되는데
그 결과 집안에 있는 대부분의 책에는 김치얼룩이 남게 된다
활자중독증이 심각하던 시절에는
온 인생이 도서관에만 딱 있었으면 좋겠다 싶기도 했었다
누구는 인생을 유치원에서 다 배운다고 했듯이
그때의 나는
책 속에서 질서정연하게 펼쳐지는 세상만이 이해가 되어서
현실에서는 상당한 부적응자로 살아가는 면이 있었다
(이것이야 말로 가장 심각한 이 병의 증상이다)
아무튼 마흔을 전후하여 눈이 안좋아지던 시기가 있었는데
그때부터 책을 멀리하고 영상을 보는 것이 더 편해졌다
활자중독증은 고쳐졌지만 이건 고쳐지지 않는 편이 나았을 일이다
지금은 글을 읽거나 쓰는 것이 빨리 안되고 답답해졌으니 말이다
돈을 잘 번다고 유튜브에서 강연하는 사람들이 모두다 입을 모아
죽도록 책을 읽어야 한다고 하는데
아쉽다, 나의 고질병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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